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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자 예수 | 김춘식 목사 | 2021-12-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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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18-25절 개역한글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구원자 예수 [마태복음 1:18-25]
예수가 누구인가? 사람마다 생각하고 보는 관점이 다르다. 하나님의 아들. 순수한 목수의 아들, 유대인의 독립운동가 유대인의 왕, 축복의 분배자 정치적 혁명가 자선사업가, 그래서 기대도 크고 실망도 많다. 하나님의 말씀은?[21]
1. 자기 백성을 위해 오셨다. 예수는 헤롯 가이사 빌라도 유다 불신자의 것이 아니다. 영접한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의 구주이시다(요한 1:12). 예수는 자기 백성의 구세주요 하나님이시다. 크리스마스는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셨으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희생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오셨다. 예수 안에 사는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오셨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구별하신 택한 백성인 우리만을 위하여 오셨다. 그리고 앞으로 예수를 믿을 자들을 위하여 오셨다. 종교다원주의는 복음이 아니고 진리도 아니다. 성탄절에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리가 아닌 것에 속고 있는 자들에게는 진리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생명을 주시는 진리를 막연한 행사처럼 지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기뻐하며 감사하자.
2. 구원하러 오셨다. 육체의 해결 자, 가난한자의 떡. 정치적인 해방, 질병의 고통. 명예, 부귀, 외로운 자의 친구로서의 예수가 오신 것이 참 목적이 아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건강한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 죄 없는 자는 예수의 이름이 귀하지 않다. 죄인들만 영접하고 믿을 자격이 있다.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고백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죄 값은 사망이다. 예수께서 사망을 제거하기 위하여 십자가 지러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는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구원자이시다. 사람들은 의롭게 살고 싶고 성공하고 훌륭한 사람 존경 받는 사람 풍성한 삶 등에 목말라 있다. 어떤 목사님이 병원에 갔다. 의사가 진단 후 처방 그리고 신경 쓰지 말라/ 신경 쓸 일이 워낙 많다. 술 먹지 말라/아에 보지도 않는다. 어디가 아파서 그러느냐?/원래 안 먹는다. / 술 안마시고 어떻게 사느냐? 아까는 먹지 말라한 의사이다. 실제로 술 안마시면 못 사는 사람이 있다. 낚시 경마 골프 도박 자식 주식 권력에 미쳐 있다. 그러나 목마를 뿐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평강이 없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 4:14] 사미리아의 수가성 물가의 여인은 구세주를 만나 주의 증인이 되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당연히 구원의 증거로 구세주이신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며 그의 뜻에 순종하여 살아야 한다. 박사들의 진실한 경배 - 황금은 재물의 상징 -그리스도를 만나면 드리기를 원한다. 중생한 영혼의 첫 번 충동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드리고자 한다. 사랑은 최고의 것을 가져온다. 성탄절은 구원에 감사하는 절기다.
3. 기묘자다. Wonderful Counselor [이사야 9:6] "이는 한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 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그 이름이 나타나는 곳마다 새로운 변화와 새 생명의 창조가 일어난다. 그는 참으로 기묘한 분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어떠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환난이나 고통이나 질병이나 핍박이나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염려할 것 없다. 하나님을 그들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2년째 계속 되는 펜데믹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생존하는 인문학계 최고의 석학이신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이셨으며 전문화부장관을 역임하신 이어령 박사는 오늘 현실을 이렇게 말했다.
첫째로, 인간의 능력으로 쌓아 올린 문명과 문화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가를 보았다. 기독교에서 제일 큰 죄악이 ‘휴브리스(Hubris)’, 인간의 오만이다. 우리는 인간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았다. 둘째로, 우리는 생존의 수단 때문에 생명의 귀중함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계 각국의 차이를 국내총생산(GDP)의 숫자로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이제는 코로나의 발생 수와 사망자 수로 바뀌었다. 전 인류가 이 세상 모든 가치 가운데 생명 이상의 것이 없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인간은 죽는 존재이면서도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온 것이다. 셋째로, 특히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시련을 겪었다. 기독교 문명의 본바탕인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도 많은 시련을 겪고 있다. 꼭 중세 시대 페스트로 인해 기독교의 기반이 흔들리던 때와 같은 그런 위기를 맞이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대역병이 지나가고 나면 인구도 불어나고 그 이전보다 번영이 이루어졌다. 페스트도 그랬다. 이 패러독스의 마지막이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불신 받고 쇠퇴해 가는 기독교에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인간의 오만과 그로 인한 재앙을 극복했던 그 힘을 되살려내는 희망이다. 이는 ‘크리스처니티(Christianity)’가 새롭게 해석되고 기독교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는 기회다. 흔한 말로 “위기는 기회다.” 교회는 지금도 핍박받고 있다. 마치 코로나를 옮기는 질병의 온상처럼 인식되고 있다. 교회는 늘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병만 옮긴다고 예배도 못하게 핍박을 받고 있다.
<우리가 사랑한 개>의 비석 미국 몬타나주의 한 목장에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이웃 사람이 갓난 아기에게 좋은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강아지도 굉장히 큰 개가 되었다. 대문을 열어 놓은 채 아버지가 도시의 시장에 갔다가 한 시간 만에 돌아왔다. 아이가 없어 미친 듯이 찾았다. 한참 후에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옷은 갈기갈기 찢기고 얼굴은 온통 먼지와 눈물로 범벅이 된 딸은 잠들어 있었고 개가 피를 흘리며 아이를 지키고 있었다. 개의 모습을 보고 처절한 싸움이 있었음을 알았다. 주위 덤불속에 두 마리의 늑대가 죽어있었다. 아이는 별탈이 없었지만 심한 상처 입은 개는 다음날 죽어 관을 만들어 묻고 비석을 세웠다. 딸의 목숨을 구해준 개를 이토록 사랑할진대 우리를 위하여 구원자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구주를 사랑하시지 않겠는가?
어느 날 초능력 AI 로봇이 신에게 도전한다. “당신이 만든 인간과 내가 만든 인간, 어느 쪽이 더 우수한지 내기를 해봅시다.” 그러자 하나님이 웃으시면서 “어디 한번 해봐라” 하고 말씀하셨다. AI 로봇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처럼 흙을 모아 반죽을 하려고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잠깐, 내가 만든 흙에 손대지 마. 흙도 네가 만들어”라고 하셨다. 로봇을 만드는 금속, 플라스틱 같은 원자재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나? 지구에 있는 모든 원자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지요. 우리에게 주신 창조주의 선물이다. 부족한 인간이 마치 전능한 신처럼 지식과 지혜를 갖고 선악을 판단하려고 하는 그것이 바로 원죄요 원죄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며, 남을 심판하려 한다. 실제로 제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영국군 사이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참호 속 서로 대치하고 있었던 군인들이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독일 병사들이 캐럴을 부르고 촛불을 켤 때 그 소리를 듣고 영국군들이 참호 속에서 뛰어나와 함께 캐럴을 부른다. 그러자 독일군도 전쟁을 잊고 참호 속에서 기어 나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전쟁은 휴전과 같은 화해의 무드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분명한 기적이었다. 그들이 같은 기독교 문화를 공유하였기에, 어린 시절 촛불을 켜고 캐럴을 부르며 하나님을 맞이했던 평화의 기억이 있었기에 그런 엄청난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공감의 신이 전쟁의 신보다 크고 강했다. 자기 백성을 찾고 계신다. - 전하자, 사랑하자. 가장 귀한 것으로 사랑하자. 기묘자요- 임마누엘의 주님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축복이요, 그리스도 밖에서는 모든 것이 절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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